넥스트 리터러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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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선생님들이 미디어 리터러시를 공부하는 이유

기자명 김지훈
  • 입력 2022.09.13 10:48
  • 수정 2022.09.13 11:02

저는 부산 지역의 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입니다. 아침부터 교실에 모여 공부, 운동, 식사, 놀이까지 아이들과 함께 부대끼고 있습니다. 어떨 때는 아이들을 다 알 것 같다가도, 어떨 때는 ‘외계에서 온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이들이 낯설기도 합니다. 이렇게 낯선 아이들을 볼 때면 ‘꼰대자가진단’이나 젊은 세대가 쓰는 신조어를 알아맞히는 ‘MZ세대 구별법’과 같은 콘텐츠가 떠오릅니다.
 

 

“야 어제 로벅스에서 UGC템 새로운 것 끼고 레인보우 스킨 쓰니까 존잼이었음.”,

“나는 킹피스랑 던퀘 그룹 즐찾했음ㅋㅋ”

“친구랑 액션하는데 갑자기 티밍해서 진짜 짜증났음. 근데 나중에 둘이 오더까지 함.”

“어제 투바투 보고 입덕해서 지금 뮤스하는중ㅎㅎ”

 

이해가 되시나요? 아이템과 캐릭터 이름, 커뮤니티에서 생겨난 줄임말, 인기 많은 유튜버나 아이돌 그룹의 멤버 등 아이들의 대화에는 어른인 교사가 끼어들기 힘든 그들만의 언어가 많습니다. 매일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아이들인데, 막상 아이들의 일상적인 대화에 쉽사리 끼어들지 못하고 그들과 구분지어지는 낯설음은 교사로서 아주 심기불편한 상황입니다.

언어 뿐 아닙니다. 초등학교 3, 4학년만 되어도 아이들은 가족의 품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지면서 또래 관계를 무척 중요하게 여깁니다. 아이들은 또래와의 대화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게임, 커뮤니티, 유튜브, SNS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또, 수업이 끝나면 학원이나 방과후 수업까지 남는 시간에 스마트폰을 해야 합니다. 부모나 교사의 눈총에서 벗어나 스마트폰을 자유롭게 볼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수업이 끝나면 데이터가 무제한인 아이들 옆에 우르르 몰려 아이돌이나 게임 영상를 함께 보고 핫 스팟으로 데이터를 동냥하는 것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또 수업용으로 사용하는 학교 와이파이를 어떻게 알았는지 ‘몇 층 화장실 앞 복도에서 와이파이가 된다’는 고급 정보가 돌면, 그곳은 어느새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룹니다.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면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운동장으로 나가는 대신, 편하게 스마트폰을 볼 수 있는 의자를 찾아 다닙니다. 아이들의 교과서에는 게임 속 이모티콘이나 SNS에서 쓰는 유행어들이 낙서되어 있고, 쉬는 시간도 게임, 유튜브 영상이나 웹툰, 온라인 커뮤니티, SNS, 덕질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아이들의 모든 일상이 스마트폰이라는 거대한 블랙홀로 빠져들어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편하게 앉아 스마트폰을 할 수 있는 곳은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김지훈
편하게 앉아 스마트폰을 할 수 있는 곳은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김지훈

 

처음에는 위험한 미디어 세상에서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섰습니다. 아이를 물가에 내놓은 것처럼 애가 탔습니다. 한편, 교육부와 교육청에서는 스마트폰과 인터넷 과의존을 예방하기 위한 정책들을 쏟아냈습니다. 도덕 교과에서 사이버폭력에 관한 단원, 실과에서 정보통신기술에 대한 단원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것이 스마트폰 과의존 예방 교육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들은 의무적으로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진단을 받고, 학교에서는 필수적으로 정보통신윤리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모습은 여전히 낯설었습니다. 우선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현장의 분위기와 교육부 등의 정책 기조가 맞물려 스마트폰을 ‘위험한 도구’로만 인식하는 풍토 때문에,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일상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선생님들이 어릴 적에는 스마트폰이 없었고, 대학에서도 스마트폰 세대나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 대해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알 수 없는 단어들을 쏟아내고 낯선 행동을 따라 하는 아이들이 위태로워 보이는 것은 학부모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스마트폰은 멀리해야 한다’는 인식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저조차 등교하자마자 아이들의 휴대폰을 수거했으니까요. 그럴수록 아이들의 미디어 생활은 더욱 은밀해지고 교사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숨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고정관념은 의외로 쉽게 깨졌습니다. 재미있는 수업을 위해 교과서 내용보다는 아이들이 좋아하고 흥미로워할 것들로 자료를 재구성합니다. 그런데, 스마트폰 속 아이들의 모습이 수업자료가 되었을 때 아이들은 더 재미있고 즐겁게, 더 집중해서 배웠습니다. 교실보다 스마트폰 속의 아이들이 더 진솔하고 솔직한 모습을 보이곤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내성적이고 조용하던 아이가 SNS에서 영향력을 뽐내기도 하고, 학교에서는 주의력이 산만하고 학업 성취도가 떨어졌지만 유튜브에서는 과학 채널을 여러 개 구독하는 잡학다식한 아이도 있었습니다. 스마트폰 속에 아이들의 삶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 때 알게 된 것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었습니다. 그리고 대충 ‘스마트폰’이라 부르던 것이 미디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스마트폰은 도구가 아니라 세계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음 방과후 수업을 기다리며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는 아이들. ⓒ김지훈
다음 방과후 수업을 기다리며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는 아이들. ⓒ김지훈

 

하지만, 여전히 ‘아이들에게 미디어 리터러시를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미해결 상태였습니다. 코로나 19를 거치면서 교육현장에도 디지털 리터러시나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말이 자주 언급되고 있지만, 대부분 원격학습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미디어를 학습 도구 혹은 학습 환경으로만 인식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또 사이버폭력예방교육, 스마트폰 과의존 교육과 같이 미디어를 여전히 ‘위험’하고 ‘멀리’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어른들의 시각은,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일상을 부정당하는 듯한 거부감을 줄 뿐입니다. 매일 아이들과 부대껴야 하는 교사로서, 아이들의 미디어를, 아이들의 일상을, 아이들을 더 잘 알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전제가 되었을 때 ‘위험하니까 조심하자’는 우리의 말이 아이들에게 잘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책을 읽기로 했습니다.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해 공부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몇 시간의 강의나 연수로는 아이들의 실제 미디어 생활을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자세히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혼자 읽고 싶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야말로 누구보다 아이들을 가까이 두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교사 1명의 경험은 매년 켜켜이 쌓여진 수많은 아이들의 일상을 교육자의 관점에서 기록한 비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선생님들의 생각과 경험을 공유한다면 더 많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더 가까이 들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동료가 필요했습니다. 미디어 교육은 오래 전부터 연구되었지만, 정작 교과서도 성취기준이 없기 때문에 교사가 혼자만의 노력으로 미디어 교육을 실천하기는 어렵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 함께 고민하고 수업에 대해 함께 반성하고 성찰할 수 있는 동료 교사는 미디어 교육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지역 내 선생님들께 무작정 메일을 보냈습니다. 함께 읽자고. 그렇게 해서 <함께읽기 부산>이 시작되었습니다.
 

부산 지역의 초등학교 교사 17 명이 매달 미디어 리터러시, 디지털 리터러시와 관련한 책을 함께읽고 의견을 나누는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김지훈
부산 지역의 초등학교 교사 17 명이 매달 미디어 리터러시, 디지털 리터러시와 관련한 책을 함께읽고 의견을 나누는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김지훈

 

우리 모임은 한 챕터를 읽고 밴드에 인증글을 남겨야 합니다. 대체로 ‘인상적인 문장’, ‘나의 느낌이나 생각’, ‘함께 나누고 싶은 질문’을 적습니다. 다들 같은 직업, 비슷한 지역, 연령대의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선생님들이 꺼내놓는 이야기는 모두 특별하고 다양했습니다. 어떤 선생님은 자신이 했었던 수업 이야기를 해 주시고, 관련한 자료를 공유해 주셨습니다. 어떤 선생님은 전통적인 교육의 관점에서 리터러시와 관련한 생각을 밝혀주시고, 자신의 통찰을 공유해 주셨습니다. 또 다른 선생님은 생활 지도에서 겪은 어려움을 때문에 힘들었는데 독서 모임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책을 모두 읽은 뒤에는 ‘저자와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지역의 작은 독서모임이지만 아이들을 위해 우리가 더 많이, 더 깊게 배우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알음알음 저자에게 연락해 함께 이야기하자며 섭외했습니다. 지금까지 2권의 책을 함께 읽었는데, 다행히 2권의 저자 모두 흔쾌히 모임에 함께 해 주셨습니다. 저자와의 만남은 책과 학교, 교육 현장에 대해 서로 대화를 주고 받으며 독서를 완성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또, 매주 온라인, 오프라인 모임을 가졌습니다. 글로만 연결되는 것보다 좋은 동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자리였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넓히고 다양한 관점에서 미디어를 바라보고 교사로서, 시민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라떼는 말이지~’ 요즘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대화는 항상 이렇게 시작되곤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여전히 어른들의 눈으로 아이들의 변화된 모습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은 아닌가 조심스럽습니다. 유튜브, 코로나19, 뉴미디어, 메타버스 등 디지털 미디어 환경은 소용돌이치듯 변하고 있습니다. 사실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에, 하필 아이들이 먼저 도착한 것 같습니다. 그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 신나게 파도를 타기도 하고, 어떤 파도가 위험한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아이들이 거대한 파도에서 살아남는 더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들이 왜 미디어 리터러시 읽기 모임을 시작했냐구요? 교사부터 미디어의 변화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이 아이들을 이해하고 아이들을 바르게 성장시킬 수 있는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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