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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을 기다리던 아이, 답을 검증하는 기자를 꿈꾸다

기자명 박동주
  • 입력 2022.11.11 15:51

나는 많이 묻는 아이였다. 선생님이 풀뿌리 민주주의를 설명하면, 지역 구의원이 쓸모없다던 택시 기사 아저씨의 말이 떠올랐다. 왜 그런 것이냐고 질문하면 선생님들은 비슷하게 반응했다. 첫 질문에는 잘 대답해 줬고, 두 번째 질문에는 당황하며 대답했고, 세 번째부터는 수업 진도 나가야 하니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했다.

사람들은 내게 유학 가면 잘 맞을 거라 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질문 많이 하고 자기 의견을 적극적으로 말하면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했다. 여기서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좀 더 나이를 먹자 대학 공부가 내게 잘 맞을 거라 했다. 대학에서는 토론을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지금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 말을 믿고 기다렸지만, 대학생이 되어도 성에 차지 않았다. 대학 수업 역시 진도 나가느라 바빴다. 밤샘 토론 같은 건 없었다.

세 개 이상의 질문에도 일일이 답을 들을 수 있는 기적은 대학 학보사의 기자 명함과 함께 왔다. 학보 기자증을 달랑거리며 학교 안팎의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사람들은 ‘이런 걸 왜 묻는 거야?’ 하는 표정을 짓다가도 기자 명함을 보고 답을 해줬다.

나의 태도도 달라졌다. 취재를 위해 묻는다는 분명한 명분이 질문에 자신감을 실었다. 학교 재정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왜 이렇게 운영해야 하는지, 방금 한 말은 무슨 의미인지 묻는 데 주저하지 않아도 됐다. 답이 시원치 않으면, 상황을 더 잘 아는 사람을 찾아 나섰다. 그 상태로 질문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았다. 평생 기자로 살고 싶었다.

 

기사와 무관한 이미지.  pexels
기사와 무관한 이미지.  pexels

 

그렇게 다짐하고서 실수를 했다. 어느 취재원의 말만 믿고 학내 행사를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 학교 본부는 그 기사를 보고 행사를 아예 없앤다고 했다. 학생들의 항의가 쏟아졌다. 전화가 하도 많이 와서 휴대폰을 쓸 수 없었다. 나는 기자 명함을 석 달 만에 반납하고 학보사를 그만뒀다. 고민과 상처가 깊어 나중엔 학교도 그만뒀다.

방황을 지나 나는 다른 대학에 갔고, 어쩌다 대학 부설 연구소에서 일하게 됐다. 실험하고 논문 읽고 학회에 참석하면서 과학을 배웠다. 사실을 규명할 때는 반복 검증과 교차 검증을 반드시 거친다. 모든 과정을 거친 뒤에도 오류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언제든 충분한 반증이 나오면 사실 판단을 뒤집는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가 반박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자신의 가설을 뒤집는 반증을 흥미롭게 들여다보는 사람은 봤지만, 그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일로 연구를 그만두는 이도 없었다.

학보사에서 겪었던 일을 다시 생각해 봤다. 당시 내가 무엇을 들었고, 무슨 근거로 기사를 썼는지, 항의를 받은 뒤 원래 기사의 어느 부분을 어떻게 고쳤는지 분명치 않았다. 기억에만 어렴풋하게 남았고, 구체적 기록은 없었다. 애초부터 질문만 무수히 던지고 꼼꼼하게 기록하지 않았다. 그 기록을 보존하지도 않았다. 기록이 없으니, 틀린 부분과 고치지 말았어야 하는 부분을 판단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나의 취재에 오류가 생길 가능성을 인정하여 잘 기록하고 여러 번 검증했어야 했다.

그걸 알아차린 나는 연구실에 앉아 다시 기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하고 싶었다. 저널리즘대학원에 진학한 나는 전화를 걸고 메일을 보내고 취재원을 만난다. <단비뉴스> 기자라고 소개하고 질문을 던진다. 전부 설명될 때까지 계속 묻는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 이제는 그 과정을 모두 기록한다. 잘못됐을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둔다. 다시 묻고, 다른 사람에게 묻고, 스스로 되묻는다.

 

 

난처해하는 선생님에게 한 번 더 물으면 영영 답해주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던 어린 시절부터 꿈꿨던 길을 다시 걷고 있다. 어린아이의 호기심을 간직한 채 과학자의 철저함을 배운 덕분에 나는 저널리즘의 세계에서 질문의 즐거움과 자신감을 되찾았다. 묻는다. 반드시 기록한다. 거듭 검증한다. 그게 내가 걷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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