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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본디 모습을 보려는 사람들 – 내가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이유

기자명 목은수
  • 입력 2022.11.11 16:00

대학 입학 뒤 3년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학교 청소노동자들이 인원충원과 정년보장을 요구하며 본관을 점거하여 농성에 들어갔다. 농성장에 찾아가 밥을 나누고 커피를 마셨다. 오가며 눈인사만 나눴던 청소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한참 들었다. ‘해골 두 쪽 나도~’ 같은 과격한 가사가 담긴 민중가요를 처음 듣고 너무 놀랐다고 어느 아주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박완서 작가의 소설 <나목>을 좋아한다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청소 노동자와 본격 문학의 조합이 낯설었지만, 그게 나의 오랜 편견이라는 걸 깨닫고는 이내 부끄러워졌다.

 

기사와 무관한 이미지.  unsplash
기사와 무관한 이미지.  unsplash

 

폭력적인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아름다운 것을 동경하는 청소노동자들은 그동안 강의실 청소만 한 것이 아니었다. 캠퍼스 곳곳의 풀을 뽑는데 수시로 동원됐다고 했다. 현장 반장에게 밉보이면 힘든 장소를 떠맡아 청소하게 된다고도 말했다. 노조를 결성한 뒤 그런 일은 사라졌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고되게 일하며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이 잘 모르는, 장기 농성의 이유였다. 86일의 농성 이후 마침내 학교는 청소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했다. 아주머니들은 웃다가 울고,울면서 웃었다.

그 일은 나에게 기자의 꿈을 심어줬다. 다른 세계에 사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일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더 많은 세계로 나아가 더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방법을 고민했다. 기자가 된다면 좋겠다는 꿈을 꾸게 됐다. 저널리즘대학원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기자 공부를 하게 된 것도 2018년 농성장 덕분이다.

얼마 전, 대학을 찾아갔다. 농성장에서 만났던 청소노동자를 다시 만났다. 처음에는 그저 옛 추억을 나누리라 생각했다. 어설픈 기자의 꿈을 단단히 내려치는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모처럼 마주 앉은 아주머니는 농성 당시 노조에 답지한 성금과 물품을 자신이 관리했다고 자랑했다. 그때 도움을 줬던 학생들이 고맙다고도 했다. 학교 당국을 은근히 탓하는 ‘뒷담화’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다 아주머니는 주저하며 덧붙였다. “사실 그때 직접고용을 주장한 게 좀 후회스러워.”

 

기사와 무관한 이미지.  unsplash
기사와 무관한 이미지.  unsplash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슨 말일까? 직접고용으로 전환된 이후, 청소노동자의 고용과 노동 조건이 더 안 좋아졌다는 것이었다. 학교는 용역업체와 계약 맺지 않는 대신 직접고용한 청소 노동자의 실질 임금을 오히려 삭감했다. 용역업체를 통해 간접고용됐던 시절엔 71살까지 일할 수 있었지만, 대학 직원의 신분이 되니 60살이 되면 무조건 퇴직하게 됐다. 규정 때문인지 보조금 때문인지 분명치 않은 이유로 장애인 노동자가 늘어났는데, 그들이 청소한 자리를 두세 번 청소해야 하는 일도 생겼다. 그런 일을 바꾸거나 고치려 해도 이젠 노조의 힘이 사라졌다. 장기농성 과정에서 노조 내부의 갈등이 깊어졌고, 이후 노조원 수가 줄어들면서 학교 측과 교섭권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주머니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생각했다. 나는 그저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았고, 타인에게 손을 내밀고 싶었다. 그게 기자의 일이라 생각했다. 아주머니와 이야기 나눈 뒤에 다시 깨달았다. 직접 고용을 주장하는 노조원의 말을 그저 듣고 옮기는 건 기자의 일이 아니었다. 모두가 외치는 ‘직접 고용 쟁취!’라는 구호의 맥락을 파헤치고 분석하고 톺아보는 게 기자의 진짜 일이었다. 그게 내가 했어야 할 일이었다.

최근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이 시급인상과 휴게시설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어느 언론은 나의 모교를 모범사례로 소개하면서 ‘청소노동자 직접고용 이후 학내갈등이 사라졌다’며 직접고용이 근본적 해결책이라고 보도했다. 그 지적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온전한 것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기사에 적힌 ‘근본’이라는 단어를 보며 생각했다. 근본을 의심하고 세상의 본디 모습을 제대로 살펴보려고 분투하는 게 저널리스트의 근본일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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